Page 13 - 에코힐링 11호(2016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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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쥘부채 하나만 바라보다 “예로부터 담양군 접었다 펼치는 쥘부채는 ‘접선’이라고 부르며
만성리는 부채마을 양반보다는 서민들이 사용했던 부채였다고 한다.
힘든 노동 끝에 더위를 식혀주는 부채라
로 유명했죠. 국내 최고의 대나무가 곳곳에 쑥쑥 자라고 있 그는 더욱 애착이 간다고 한다.
으니 대나무 공예품도 자연스레 발달됐지요. 하지만 80년
대부터 중국산 부채가 밀려오며 다들 이곳을 떠났습니다.” 일하게 깎고 다듬어야 하는데, 작업 시간 대부분이 이 때 소요된다. 때마침 작
국내에서 유일하게 쥘부채를 손으로 만드는 김대석 부채 업 중이라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대나무에 닿아 ‘서걱서걱’ 소
장은 옛날을 회상하며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릴 내며 움직일 때마다 대나무들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잘려 나간다. 50년간
먹고사는 문제다 보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빙 손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후 손잡이 부분을 뚫어 고정시키고 종
그레 웃는다. 그 역시 처음부터 거창한 꿈을 가지고 쥘부 이를 부채살에 붙인 후 기름을 먹여 바싹 말리면 비로소 하나의 쥘부채가 완성
채 만들기를 고수한 것은 아니었다. 3대째 한 곳에서 부채 된다. 대나무를 고를 때부터 마지막 포장까지 직접 손으로 만들다 보니 모든 부
를 만들다 보니 장남으로서 자연스럽게 가업을 이어왔던 채는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이 된다.
것뿐이었다.
“제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 저희 집에서만 매년 부채를 10만개 종이와 대나무가 만나 맑은 바람을 일으키다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편
정도 만들었습니다. 부산 국제시장, 대구 서문시장, 서울 방산 한 점도 많지요. 무엇보다
시장 등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왔었죠. 부채 덕분에 온가족이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이후 어려움은 있었지만 저마저 포기 주문제작이 가능합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오거나 서예가들이 글씨를 써서
하면 우리 전통이 아예 사라지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한우 부채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가족 얼굴을 그려 넣어 만든
물만 줄곧 팠던 것이죠.” 특별한 부채도 있죠. 최근엔 신문지로 부채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때 그때 중요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나니, 어느 순간 그의 성실함과 집 한 사건들을 부채로 남기다 보니 나름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념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 김대석 접선장은 몇 년 전부터 매일 죽녹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에
다. 값싼 중국산 부채들 사이에서 그의 정성스러운 작품이 게 부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직접 체험하게 하고 있다. 또한 국내외 박람회
단연 돋보였던 것. 덕분에 향토무형문화유산 제2호로 지 에 참여해 플라스틱이 아닌 대나무에서 부는 자연바람을 직접 선사하고 있다.
정됐고, 2010년 전남 무형문화재 제48호 선자장(扇子匠)과 우리의 전통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오랜 세월 부채만 바라보
제48-1호 접선장(摺扇匠)으로 추가 지정되면서 그간 홀로 고 부채만 생각해온 덕분에 이젠 부채 하나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지켜온 노력이 인정을 받았다. “지죽상합 생기청풍(紙竹相合 生氣淸風)이란 말이 있지요. 종이와 대나무가 만
나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부채를 통해 저만의 맑고 푸른 바람을 널
조상의 지혜로움과 생활이 담긴 쥘부채 “부채는 여름 리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또 우리 전통이 잊혀지지 않도록 늘 같은 자리에서 부
에만 필요한 채를 만들 겁니다.”
게 아닙니다. 예로부터 일년 내내 다양한 용도로 쓰였지요.
햇빛을 가리거나, 손에 들고 지휘봉처럼 쓰거나, 신날 땐
장단도 맞추고, 파리나 모기를 잡기도 했지요. 큰 부채는
들판에서 밥상도 되고, 보기 싫은 걸 살짝 가리거나 비가
오면 우산이 되기도 했고요.”
부채 쓰임만 봐도 우리 조상의 지혜가 느껴진다는 김대석
선생. 특히 접었다 펼치는 쥘부채는 ‘접선’이라고 부르며
양반보다는 서민들이 사용했던 부채였다고 한다. 힘든 노
동 끝에 더위를 식혀주는 부채라 더욱 애착이 간다고.
쥘부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 먼저
부채살의 재료인 대나무를 깎고 다듬어 물에 담가 불린 후
건조 시키는데 이는 주로 겨울철에 작업한다. 얼었다 녹으
며 더욱 부드럽고 강해지기 때문. 이후 부챗살 재료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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