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에코힐링 15호(2017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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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그 순간 나는 아까부터 아버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격정에 사로잡힌
내 심장은 덜컹거리며 뛰었다.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나는 나의 심장 소리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형의 심장 소리도 들었다. 밤의 숲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숲은 친근했고, 밤은 아늑
했다.(본문 256P)

                        이 작품에서 숲과 나무는 정서변환의 매개체로서 사용된다. ‘정서변환’이
                        란 남녀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것, 원한관
                        계가 화해로 바뀌는 것 등을 함축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정서변환의 매
                        개체란 이러한 정서변환이 일어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행동이 이
                        루어지는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을 뜻한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에서 ‘식
                        물’은 동물성의 욕망을 초월하는 지점이며 좌절된 욕망이 승화되는 지점
                        이다. 자신 안에 가득한 동물성의 욕망을 아프게 들여다보는 이들에게
                        사랑이란 욕망과 한 몸인 절망의 근원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식물성의 절대사랑을 대안적 상상력으로 풀어놓았다.

                                                                 Information-<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좌절된 사랑의 고통
                                                                                   을 식물적 교감으로 승화해가는 과정을 처절
                                                                                   하고도 아름답게 풀어낸 작품이다. 두 다리를
                                                                                   잃은 형, 형의 애인을 사랑하는 동생, 불구가
                                                                                   된 아들을 업고 사창가를 헤매는 어머니, 어머
                                                                                   니의 마음을 평생 동안 지배한 한 남자, 그런
                                                                                   어머니를 그저 바라보는 아버지 등 <식물들의
                                                                                   사생활>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관계로 가
                                              득 차 있다. 작가는 이 좌절된 사랑으로부터 식물성의 절대사랑이라는 상상력
                                              을 길어 올리고, 이들을 사랑의 성소(聖所)이자 욕망의 회귀선인 ‘남천’으로 이
                                              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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