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23호]2019+에코힐링+여름호-최종본-고해상
P. 40
치유의 힐링 에세이힐링 에세이
치유의
한여름 숲 속 오랜 기간 붙잡고 있던 그림책 작업을 마침내 끝냈다. 몇 달 전 끊어 숲이었다. 초록의 마법이 나를 잡아 끌기라도 한 것처럼 숲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와는
즐거움 놓은 비행기 티켓의 날짜가 바로 내일이었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출 다른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격렬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지휘자의 손짓 한번에
판사에 원화를 보낸 뒤, 부랴부랴 떠나게 됐다. 프랑스 남부지방 지
일제히 멈춘 듯 머릿속이 고요해졌다.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으니 숲의 소리가
중해의 해변도시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며칠이 지난 어느 아침, 숙 하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적이 흐르던 오케스트라에서 아주 작은 악기 하나가 사뿐
글 김슬기 그림책 작가
<촉촉한 여름 숲길을 걸어요> 저자 소를 나와 해변을 따라 걷다가 도시 한쪽 끝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사뿐 연주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바람에 나뭇잎 이는 소리가 이 나무, 저 나무 바람 따라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간 곳은 도시 전체를 한 눈 제각각 다른 소리를 냈다. 어느새 악기마다 각자의 연주를 다시 시작한 오케스트라처럼
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였다. 하늘과 바다의 파랑, 해변의 하양, 건물 조화롭게 소리에 소리를 얹고 있었다. 사방으로 높이마다 다른 곳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외벽의 오래된 갈색, 창문과 지붕의 이국적이고 알록달록한 색들, 상 저 멀리 어딘가 흐르는 물소리까지 더해졌다. 머릿속 생각의 골목마다 상쾌한 바람이 부
점들, 사람들, 구석구석 촘촘히도 화려했다. 정리해야 할 생각과 새 는 것 같았다. 그래 맞다. 초록 숲의 힘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제대로 된 달콤
로 생겨난 생각들로 빼곡한 내 머릿속도 색으로 표현하면 저렇게 화 한 휴식을 취한 것 같았다.
려할까 물음이 생겼다. 조금 피곤해졌다. 숙소로 돌아가 쉴 생각으로 그 어느 때 보다 초록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때는 여름이다. 그 가운데에도 비 온 뒤, 빗물
뒤돌아 섰다. 그 때, 뜻밖의 커다란 초록과 마주했다. 에 깨끗하게 씻어놓은 선명한 여름이다. 너무 많은 입력과 출력으로 과열된 나를 컴퓨터처
럼 리셋하려면 초록 버튼이 필요하다. 선명한 여름 초록을 통해 깊은 휴식을 느끼고 나면
무뎌진 감각들이 새것처럼 말랑말랑해진다. 절정의 초록을 뽐내고 있는 숲의 색에 시각은
물론이고 젖은 흙의 진한 향기에 후각이 살아난다. 불어난 냇물에서 들리는 한층 더 맑고
시원한 소리에 청각이, 물기를 머금어 폭신해진 나무껍질과 이끼에서 촉각이 깨어난다.
쉼을 통해 맑은 몸과 마음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면 촉촉한 여름 숲으로 걸어 들어가보
자. 선명한 초록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보자. 걷다가 어느새 비가 잦아들면 조용히 비를
피하고 있던 숲 속 생명들이 하나 둘 나와서 반갑게 지저귈 것이다. 누구인지 하나하나
이름을 알지 못해도 함께 인사 나누면 된다. “거기, 너도 있었구나. 여기, 나도 있었어.”
라고 말이다.
39
38 39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