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1. 에코힐링 34호(2022년 봄) PDF
P. 35

숲 속 동화





                      학교 식당으로 가자마자 뜯어온 풀을 분리해서 씻었다. 풀을 분리하는 것은 작가 선생님이 하였는데,
                     수채랑 몇몇 친구들이 도와주었다. 보조선생님이랑 다른 아이들이 풀을 씻었다. 그런 다음 접시에다
                     담아서 놓았다. 마치 뷔페식당 같았다. 15개의 접시 앞에는 풀이름이 적혀있었다.
                     “자, 이제부터 돌아가면서 풀 맛을 보세요. 싱아, 수영, 까치수염, 메꽃 뿌리, 청가시덩굴, 산뽕잎, 미나리

                     냉이, 고추나무잎, 청미레덩굴 새순, 댕댕이덩굴 새순, 고마리, 가막사리, 화살나무 이파리, 환삼덩굴 어
                     린순...하나도 빠짐없이, 조금이라도 다 먹어 봐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풀을 기억한 다음, 식빵
                     에다 이 풀을 넣고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겁니다. 오늘 하루 특별한 빵을 먹는 거지요. 잼은 넣지 마세요.

                     잼을 넣으면 풀맛을 알 수 없으니까요.”
                      아이들은 하나하나 풀맛을 보기 시작했다. 수채는 옛날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싱아를 먹고는 너무 시다
                     고 소리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신 풀을 옛날 아이들은 왜 좋아했
                     을까? 시정이는 메꽃뿌리가 가장 맛있다고 하였다. 생밤 맛이었다. 수채도 그 맛이 좋았지만, 겨자 맛이
                     나는 미나리냉이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그러자 시정이가 “나도!”하고 소리쳤다.

                     “난 겨자에다 먹으면 뭐든 맛있어. 삼겹살도, 치킨도 겨자 없으면 못 먹거든. 당연히 초밥 킬러이고...수채
                     야, 너도 겨자 좋아하니? 와, 그럼 겨자 치킨 같이 먹으러 가자!”

 아이들은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풀을  뜯어서  준비해온  비닐봉지에다  담았다.  그렇게  숲속   수채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뒤에 있는 아이가 자기도 끼어달라고 하였다. 졸지에 어른들한테 묻지도
 을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어떤 아이가 “으악, 벌레다, 벌레!”하고 소리쳤다. 아마도 숲에 온 아  않고 겨자 치킨 먹는 약속을 잡고야 말았다.
 이들 중에서 가장 키가 컸을 것이다. 그 아이의 어깨에는 갈색 자벌레 한 마리가 한 자, 두 자,   수채는 미나리냉이랑 메꽃 뿌리, 그리고 싱아 조금, 수영도 조금, 청가시덩굴도 조금 식빵에다 넣어 햄버
 세 자, 하고 세면서 올라가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덩달아 비명을 질렀다. 시정이도 벌레  거를 만든 다음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친구들이랑 종일 떠들고 놀아서 그런지 몹시도 배가 고팠다. 시정

 는 징그럽고 무섭다고 뒷걸음질 쳤다. 그때 수채가 저도 모르게 다가가서 자벌레를 떼어내자,    이는 생각보다 맛은 없지만, 너무 특별한 햄버거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먹었다. 그러면서도 시정이는 식
 모든 아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채는 쑥스럽게 웃었다.  빵을 두 번이나 더 받아와서 먹었다.
 “난 어렸을 때 주말농장에서 이렇게 애벌레들 잡고 놀았어. 근데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다리  숲에서 수채는 친구들과 숲길도 걷고, 이야기도 나누고 봄풀로 특별한 빵도 먹었다. 걷는 걸 싫어하던
 를 다친 뒤로는 숲에 가는 게 두려워졌는데, 오랜만에 숲에 오니까 그때 생각도 나고 좋아. 애벌레는 억  수채였는데 이제는 친구들과 걷는 것이 꽤 즐거워졌다. 그리고 수채는 엄마와 친구들과 숲에 가는 게 그

 지로 잡으려고 하면 안 돼. 그냥 손바닥을 내밀면 벌레가 타고 올라오지. 그렇게 애벌레랑 노는 거야.”  중에서도 제일 좋다고 한다.
  “와, 그럼 너 다른 벌레도 잡을 수 있는 거야?”
  누군가 소리쳤고, 수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채가 여자라서 그런지, 아직도 남자아이들은 믿
 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수채가 고개를 돌려서 뒤쪽 나무에 붙은 초록색 벌레를 손바닥에 올려놓자,

 “와, 짱이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소리쳤다. 그제야 오늘 여기에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숲에 가는 게 힘들지
 않냐고 엄마한테 메시지가 왔을 때는, 일부러 날씨도 덥고 기분도 엉망이라고 답장했다. 당황한 엄마
 가 너무 힘들면 보조 선생님에게 말을 하라고 하자, 그제야 괜찮다고, 벌레들이랑 재밌게 놀고 있다고

 하였다.
 숲에서 내려올 때도 수채는 전혀 도움을 받지 않았다. 다만 좀 느리게 걸었을 뿐이다. 다른 날이라면 온
 갖 짜증을 냈을 것이고, 이런 곳에 억지로 보낸 엄마를 원망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모두가 느렸으
 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선생님도 빨리 가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ECO HEALING  2022 SPRING  VOL_34                                                                      34ㅣ 35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