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36호) 에코힐링 가을호 단면_최종
P. 38

숲 속 동화







































          없이 나무 앞을 서성거렸어요. 버섯 갓 밑에                  애벌레 친구도 생각났어요. 나는 하루 종일
          서 웅크리고 있던 나는 친구 애벌레를 발견하                  집 안에 틀어박혀 안 나올 때가 더 많았어요.
          고 더듬이를 내밀었어요.                             “달팽이가 집에 가고 싶은가봐.”

          “애벌레 99호!”                                여자 아이가 수조 앞에 얼굴을 딱 붙이고 말
          그 순간 나는 빗물이 흘러 생겨난 골 사이로                  했어요.
          떨어져 눈 깜짝할 사이 큰 물살에 휘말리고                   다음 날 아빠와 아이는 나를 숲에 놓고 돌아

          말았어요.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낮의 태양에                  갔어요. 나는 더듬이를 한껏 길게 뻗어 숲의
          눈이 부셨어요. 몸은 바싹 말라 움직일 때마                  공기를 들이마셨어요. 흙냄새, 바람 냄새, 안
          다 더듬이며 발이 까끌거렸고, 어딘가에 부딪                  개 냄새, 풀냄새와 나무 냄새 모두 그대로였
          혔는지 패각에는 금이 가 있었어요.                       지만 그사이 숲은 가을 옷으로 갈아입었어

          “아빠, 여기 달팽이 좀 봐.”                         요. 미루나무는 노랗게, 단풍나무와 화살나무
          큰 비에 쓸려 텃밭의 배추 고갱이 속에 나뒹                  는 잎이 빨갛게 변해 있었고, 꽃이 떨어진 자

          굴고 있던 나를 여자 아이가 유리 수조 안으                  리엔 빨강색의 주목과 산초나무 열매, 보라
          로 옮겨 주었어요. 그날부터 숲을 헤매지 않                  색 개머루 열매가 열렸어요. 그 열매를 따 먹
          고도 상추며 배추며 신선한 잎들을 매일 배부                  으려고 돼새와 유리 딱새 같은 새들이 바쁘게
          르게 먹을 수 있었어요. 며칠이 지나자 패각                  나무 사이를 오고 갔어요.

          도 다시 튼튼해졌어요. 하지만 천적에게 쫓길                  돌참나무 곁에서 친구 애벌레를 찾아 두리번
          걱정 없이 매일 맛있는 잎들을 실컷 먹는데도                  거리고 있을 때였어요. 갑자기 돌참나무 멀쩡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어요. 숲 냄새가 그립고,                 한 가지 하나가 똑 부러지더니 바닥으로 툭



          ECO HEALING  2022 AUTUMN  VOL_36                                                                                                                                                                                 38ㅣ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